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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 운동

1920~30년대 한국기독교 절제운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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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4-16 조회수 1,326

1920~30년대 한국기독교 절제운동 연구


본 내용은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윤은순(2008)의 박사학위 논문을 인용했습니다.



  기독교는 일제시대 조선 사회의 격변기에 큰 역할을 감당하면서, 식민지 사회의 한 축으로 작용해 왔다.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고 근대화 과정에서 성장원동력으로서의  기독교는 

다양한 사회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과 지향하는 바를 알렸다.

기독교 절제운동은 19세기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경건운동을 통해 미국 사회를 각성시키며, 

술에 관한 해악을 알리고 금주 운동을 하는 바탕이 되었다.

내한한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일제시대 조선에도 

이러한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의 경건한 삶의 지표로 금주금연, 아편 금지, 축첩 금지 등이 

절제운동의 일환이되어 본격적인 절제운동이 펼쳐졌다. 

특히, 교회의 사회에 대한 역할이 부각되면서 절제운동은 사회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러한 절제운동의 이면에는 기독교 여성들의 활발한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당시 조선에 내한한 여선교사들에 의해 여성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가정 내 책임자로서 여성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1923년 조직된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는 민족주의 여성들이 대거 참여하여 

절제운동 확산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 이러한 운동의 확산이 금주금연  가두 선전과 활발한 강연, 

다양한 언론 출판 활동, 총독부에 대한 청원 등으로도 이어졌다. 

또한, 대표적 기독교 단체인 YMCA와 YWCA도 절제운동에 참여하였다.

금주금연운동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생활의 향상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운동이었다. 

금주금연으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고 축첩 제도나 폐창을 통해 

윤리적인 가정을 지키고 물산장려와 소비절약으로 경제적이고 윤택한 삶을 

유도하였다. 

즉, 절제운동은 삶과 정신을 개조시키고 근대화한 '기독교 사회'를 창조하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금주금연운동은 직접적이거나 가시적인 영향을 준 것도 있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의식을 개선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절제운동의 확산을 호소하였으며, 

음주는 생존과 상관없는 "사치적 욕망에 불과"함으로 절제를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단련을 주장하였다. 

조선일보는 "음주가 신체에 해독을 주고 경제적인 손실을 주며 

안일과 음란의 기풍을 조장하고 중대한 영향을 미치니 반드시 종교가만 

청교도적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술과 담배가 세상의 근심을 잊게 하는 

고상한 취미로 향유되기도 하지만 완고한 도학자적 견지를 떠나 

현재 경제상 불가피하게 금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사회 각계 각층에 도움을 요구하고 

인식을 확산하였다. 


  일제시기 절제운동의 대부분이 금주금연에 힘을 쏟았다면 이후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금주금연, 공창제 폐지, 소비절약 및 허례허식과 일상생활에서의 개선에 이르기까지 삶 전체를 절제, 개선하는 것이 절제운동의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