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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구녀관 소개

 

 

이화의학의 첫 시작, 보구녀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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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구녀관(普救女館)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여성병원이자 여성 의학교육기관이며,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이화의료원의 전신입니다.

 

  보구녀관의 역사는 윌리엄 스크랜튼(William B. Scranton)이 설립한 시병원(施病院)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8855월 윌리엄 스크랜튼은 조선에 도착하여 제중원에서 6주간 근무하고 자택 진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사택 옆에 한옥 4채를 구입하여 병원을 세웠고, 고종 황제로부터 시병원이라는 명칭을 하사받았습니다. 이는 윌리엄 스크랜튼의 조선 이름인 시란돈(施蘭敦)을 차용하고 베풀다()’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한편 윌리엄 스크랜튼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튼(Mary F. Scranton)은 남성 의사의 진료를 꺼려하였던 조선 여성들을 위하여 여성 의사의 파송과 여성병원 설립을 고안하였습니다. 그녀의 노력으로 여성 의사 메타 하워드가 조선에 파송되었고, 미국 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로부터 후원금이 전달되었습니다. 18871031일 초대 보구녀관장 메타 하워드가 정동 시병원에서 처음 여성 환자 진료를 개시한 이래, 로제타 셔우드 홀, 메리 커틀러, 릴리안 해리스, 엠마 언스버거, 박에스더, 아만다 힐만 등 많은 여성 의사들이 여성과 어린이의 진료에 힘썼습니다. 당시 조선 정부는 널리 여성을 구하는 집을 뜻하는 보구녀관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여 사의를 표하였습니다. 보구녀관은 환자 진료 외에 의료선교와 의학교육, 간호교육에도 매진하여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와 최초의 간호사 이그레이스, 김마르다를 배출하였습니다.

 

  본래 보구녀관은 정동 이화학당 근처에 위치한 한옥을 개조한 건물로 내부에 대기실·진료실·수술실·약제실·입원실 등의 구성을 갖추고 어엿한 병원의 기능을 1913년까지 수행하였습니다. 1892년 동대문에 보구녀관의 분원인 볼드윈 진료소가 설립되었고, 1912년 이 자리에 릴리안 해리스 기념병원(동대문 부인병원)을 신축하여 1913년에는 보구녀관을 완전히 통합하였습니다. 1914년 이후 정동의 보구녀관 건물은 이화학당 부속건물로 활용되다가 1921년 이 부지에 이화유치원이 건립되면서 철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동대문 부인병원은 해방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되었으며, 2008년 이대목동병원과 통합될 때까지 이화의학의 산실 역할을 하였습니다.

 

  2019년 이화여자대학교·이화의료원은 의과대학 마곡캠퍼스 및 이대서울병원 신축과 함께 보구녀관 건물을 복원하여 1887년 이래 면면히 이어온 이화의학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