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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료역사이야기

한국여성의학교육의 원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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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12-03 조회수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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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설립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이화에서 여성 의료인을 양성하고자 전개했던 노력의 흔적은 보구녀관에 두 번째 여성 의사로 1890년 내한한 로제타 셔우드 홀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이화학당의 김점동(박에스더)과 그의 동료들을 대상으로 생리학과 위생학을 가르친 것을 시작으로 동료 커틀러 의사와 함께 보구녀관과 평양 광혜여원에서 조직 운영한 여성의학반, 1928년의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모두 이화 여성의학교육의 뿌리이다.

이같은 기반 위에서 1945년 해방과 함께 이화는 학교를 재개, 종합대학교로의 승격을 추진하며 9개 학과를 개설하였는데 그 중 의학과가 있었다. 이렇게 1945년 10월 정식으로 이화에 의학과가 설치, 본격적인 의사양성교육이 전개되며 이화의대는 한국 여성 의학계를 선도하는 여성 의사들을 배출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이화여대 의과대학과 이화의료원에서는 2025년 6월 19일 한국 여성의학교육의 역사적 의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138년의 빛, 이화의학교육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움을 개최하였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된 이날 심포지움에서는 총 6개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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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발표는 ‘이화 여성 의학교육의 역사적 의의’라는 주제로 ‘WFMS의 여성의학교육’(김영수 교수), ‘일제강점기 여성 의료에서 동대문 부인병원의 역할’(최은경 교수), ‘여성 보건의료인 양성을 위한 ‘대학교육’의 시작’(이방원 교수)이 발표되었다. 발표자들은 한국여성의학교육 역사에서 그 시작과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던 W.F.M.S.의 역할과 그 의미, 일제강점기 여성의료선교기관으로서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초창기 여의사들의 첫 근무지로 여성의학교육의 산실 역할을 다하고 있던 동대문부인병원의미, 일제강점기 이화에서 보건의료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체제를 끊임없이 구상하였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해방 직후 의학과의 개설 결과를 낳아 현대 여성 보건의료인 성장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 과정에 대해 발표하였다.

2부에서는 ‘여성 의학교육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 하에 ‘이화 여성의학교육 개관 : 1945-2025’(심기남 교수), ‘현대 한국과 미국 여성 의학교육과 여성 의사, 1945-2020 : 변화의 흐름과 미래 방향성’(공혜정 교수), ‘이화 여성 의학교육의 미래’(정소미 교수) 발표가 진행되었다. 각 발표는 이화의 의학과 개설 이현재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발걸음들, 한국과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대 여성 의학교육 발전 경로의 비교 분석을 통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이화 의학교육 발전과정과 앞으로의 혁신 추진 계획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었다.


1887년 보구녀관으로부터 시작된 한국 여성 근대 의료의 문은 돌봄과 치유를 열어간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여성의 교육과 성장, 사회진출로 확대되었다. 다만 그 모든 과정들이 순탄하게 흘러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시대적인 한계,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며 때로는 중단되기도, 때로는 꺽이기도 하는 시련의 시간들이 동반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진전할 수 없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강구하고자 노력하였다.

한 명의 의료인을 배출한다는 것은 어떤 한 개인의 역량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1890년 로제타 홀이 보구녀관에 의료보조훈련반을 만들어 기초 의학 교육을 진행한 씨앗이 한국 땅에 뿌리를 내리고 여성 의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 기관으로 열매를 맺기까지는 여러 의료 선교사들과 외국에서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유학 생활을 거쳐 의사가 된 초창기 한국인 여의사들의 헌신, 그리고 이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한 W.F.M.S.와 이름 모를 많은 국내외 후원자들의 힘이 모여졌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화라는 이름으로 해방과 함께 시작된 이화여대 의학과는 갑자기 주어진 해방의 선물이 아닌 지난 60여년 가까이 보구녀관과 동대문부인병원을 통해 진행되었던 여성 의학교육의 역사가 이루어낸 산물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국여성의학교육의 연원을 추적하는데 있어 결과적인 측면에서의 첫 모습이 아닌, 그 결과를 이루어내기까지의 과정에서 처음이 어떤 모습으로 시작하였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심포지움은 그 첫 시작을 짚어보고 이후 한 걸음 한 걸음이 어떻게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모색해보는 자리였다.

이날 심포지움에서 한 발표자가 말한 ‘우물을 판 자의 수고를 잊어서는 안된다’라는 말을 다시금 생각해보며 이화에서 뿌리내린 의학교육이 이화를 넘어 한국여성의학교육의 연원으로서 그 가치를 이어가며 새로운 미래, 새로운 이화에 더 단단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화의료원의 모든 구성원들은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화의대 학생들에게 전하는 강덕희 이화의대 학장의 당부의 말을 되새겨본다.

“여러분은 이 숭고한 유산을 이어갈 이화의 미래입니다. 여러분이 배우는 이 자리, 이 시간은 단지 개인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인류를 향한 섬김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이화에서 배운다는 것’은 곧 ‘나의 배움이 세상을 밝히는 도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이화의 주체로 우뚝 서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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