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의료역사이야기
원고지에 필사하여 제출한 1950년대 의과대학 석사학위 논문
그리고 이듬해 8월 문교부 제1호 종합대학 인가를 받았다. 해방과 함께 이화에 입학해 4년의 대학교육을 마친 이들에 대한 졸업식이 1949년 7월 거행되었다. 그러나 의학과의 경우 4년이 아닌 6년의 교육이 진행되었기에 1회 졸업식에 의학과는 포함될 수 없었다.
그러나 설립 직후 한국전쟁의 발발로 대학원의 정식 개교는 그 해 10월 부산 피난교사에서 이루어졌다. 1951년 8월 부산 피난지에서의 첫 졸업식이 거행되었고 이 때 1945년 10월 행림원 의학과에 입학해 6년의 모든 정규과정을 마친 의학과 학생 27명(전시연합대학 졸업생 3명 포함)이 이화여자대학교 의학과 첫 졸업생으로 배출되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의 졸업생들은 전쟁 중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학원에 진학하여 심도있는 연구와 학업생활을 이어갔다.
거행되었다. 1954년 3월 5일자 《이대학보》에는 첫 석사학위 수여를 앞둔 7명의 논문제출 대상자와 심사 및 졸업 일정 관련 기사가 실렸다.
"거센바람 몰아치는 산비탈 천막교실에서 때로는 얼음물을 녹혀가며 실험을 하고 단 하나의 통계를 얻고져 매일같이 20리길을 걸어다닌 눈물겨운 노력이 결실되어 드디어 지난 2월 27일 석사학위 논문 제출 마감날까지 본 대학원 학생 중 전 7명이 학위논문을 제출하여 현재 논문위원회에서 심사중인데 그들의 연구요목은 심리학, 교육학, 화학, 의학 등 다방면에 걸친 것으로 이들의 존귀한 연구는 본 대학원에는 물론 한국학계에 대한 큰 공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출한 논문은 3인 이상의 심사위원이 검토 심사하고 종합시험이 있은 후 3월 13일 대학원위원회심사회를 거쳐 3월 15일 석사학위 수여자가 최종적으로 결정 발표될 것이며 이어서 학위수여식이 3월 19일 본교 대강당에서 거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의학과 1명(반헌경)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약학과 이숙연과 의학과 반헌경은 최종 졸업자 명단에 들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해 7월 이화여대 대학원은 7명의 석사학위자를 추가로 배출했는데 3월에 논문을 제출했으나 졸업하지 못한 반헌경과 이숙연이 포함되었다. 이때 의학과에서는 반헌경 외에도 김순진이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석사학위자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하였다. 아래 표는 1950년대 이화여대 의과대학에서 배출한 석사학위자들의 명단과 논문제목이다.
최순옥은 3회 졸업생이었으며, 김혜창은 서울여자의과대학 출신이었다.
직접 작성해 제출한 형식이다. 특히 1955년까지 제출한 논문들은 ‘이화여자대학교’라는 교명이 인쇄된 원고지에 제출한 원본이 고스란히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다. 그리고 이 논문들을 넘기다 보면 이 시기 선배들이 어떻게 공부를 하고 논문을 작성했는지가 머리속에 그려진다.
1954년 3월과 7월 학위를 받은 대학원생들이 부산 피난교사에서도 학업을 지속하고 논문 작성에 열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논문 작성 후 최종 제출 전 오탈자나 인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을 파란색 펜으로 수정한 부분들이 보이는 것도 이 시기 논문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 시절의 논문 한 장 한 장에는 당시 학생들의 열정과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뚫려있다. 아마도 이 논문을 제출했을 당시에는 왼쪽에 구멍을 뚫어 끈으로 묶어 제출했던 것을 시간이 지난 어느 시점엔가 도서관측에서 논문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와 같은 검정색 논문 하드커버를 제작한 후 논문을 새로 제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진일보한 연구성과들이 나올 수 있었다. 가끔 지치고 힘들 때 도서관 서가에 가서 이 시기 선배들의 논문을 한 번씩 들춰보자. 정성이 묻어나있는 그들의 글자 하나 하나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고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잡아 주는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