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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료역사이야기

원고지에 필사하여 제출한 1950년대 의과대학 석사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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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12-03 조회수 1,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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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이화는 빠르게 대학교육체제를 갖추어 10월부터 박탈당했던 교명을 찾고 여성고등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8월 문교부 제1호 종합대학 인가를 받았다. 해방과 함께 이화에 입학해 4년의 대학교육을 마친 이들에 대한 졸업식이 1949년 7월 거행되었다. 그러나 의학과의 경우 4년이 아닌 6년의 교육이 진행되었기에 1회 졸업식에 의학과는 포함될 수 없었다.

종합대학으로 학사학위자를 배출한 이화는 각 분야의 여성 학자와 전문가를 양성·배출하고자 1950년 6월 대학원을 설립, 인가받았다. 그러나 설립 직후 한국전쟁의 발발로 대학원의 정식 개교는 그 해 10월 부산 피난교사에서 이루어졌다. 1951년 8월 부산 피난지에서의 첫 졸업식이 거행되었고 이 때 1945년 10월 행림원 의학과에 입학해 6년의 모든 정규과정을 마친 의학과 학생 27명(전시연합대학 졸업생 3명 포함)이 이화여자대학교 의학과 첫 졸업생으로 배출되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의 졸업생들은 전쟁 중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학원에 진학하여 심도있는 연구와 학업생활을 이어갔다.

부산 피난교사에서 시작된 이화여대 대학원의 첫 졸업식은 1953월 8월 서울 복귀 후 이듬해인 1954년 3월 서울 신촌캠퍼스에서 거행되었다. 1954년 3월 5일자 《이대학보》에는 첫 석사학위 수여를 앞둔 7명의 논문제출 대상자와 심사 및 졸업 일정 관련 기사가 실렸다.


"거센바람 몰아치는 산비탈 천막교실에서 때로는 얼음물을 녹혀가며 실험을 하고 단 하나의 통계를 얻고져 매일같이 20리길을 걸어다닌 눈물겨운 노력이 결실되어 드디어 지난 2월 27일 석사학위 논문 제출 마감날까지 본 대학원 학생 중 전 7명이 학위논문을 제출하여 현재 논문위원회에서 심사중인데 그들의 연구요목은 심리학, 교육학, 화학, 의학 등 다방면에 걸친 것으로 이들의 존귀한 연구는 본 대학원에는 물론 한국학계에 대한 큰 공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출한 논문은 3인 이상의 심사위원이 검토 심사하고 종합시험이 있은 후 3월 13일 대학원위원회심사회를 거쳐 3월 15일 석사학위 수여자가 최종적으로 결정 발표될 것이며 이어서 학위수여식이 3월 19일 본교 대강당에서 거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논문 제출자들의 소속을 보면, 교육학과 1명(안인희), 심리학과 1명(주동혜), 약학과 4명(정명순, 이병득, 안영옥, 이숙연), 의학과 1명(반헌경)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약학과 이숙연과 의학과 반헌경은 최종 졸업자 명단에 들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해 7월 이화여대 대학원은 7명의 석사학위자를 추가로 배출했는데 3월에 논문을 제출했으나 졸업하지 못한 반헌경과 이숙연이 포함되었다. 이때 의학과에서는 반헌경 외에도 김순진이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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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9월 27일자 <이대학보>에 실린 석사학위 졸업자 기사. 사진 속 아래 2명이 의학과 졸업생인 김순진과 반헌경이다.



이처럼 1954년 7월 석사학위자를 처음으로 2명 배출한 이화의대는 이듬해인 1955년 2월 4명, 1956년 1명, 1957년 2명의 석사학위자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하였다. 아래 표는 1950년대 이화여대 의과대학에서 배출한 석사학위자들의 명단과 논문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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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9명의 석사학위 졸업생들은 중 8명은 이화여대 의과대학 출신으로 반헌경, 김순진, 박은보, 김애주, 최정선, 김혜성이 1회, 이명재와 최순옥은 3회 졸업생이었으며, 김혜창은 서울여자의과대학 출신이었다.

한편, 이들이 수여받은 석사학위의 종류에는 차이가 있는데 1954학년도(1955년 2월 졸업) 졸업생들까지는 이학석사학위가 수여되었으나, 1955학년도(1956년 2월 졸업)부터는 의학석사학위가 수여되었다. 처음 이화에 대학원에 설치되었을 때는 학위의 종류가 문학석사와 이학석사 2가지였으나 1955학년도부터 학위의 종류가 세분화됨에따라 의학과 졸업생에게는 의학석사학위가 부여된 것이다.

현재 이화여대 마곡캠퍼스의 의과대학 도서관에는 1950년대 제출된 석사학위논문이 서가에 비치되어 있는데 안타깝게도 의과대학 1호 석사논문인 반헌경의 논문과 이듬해 제출한 최정선의 논문은 현재 부재한 상황이다. 1950년대 논문은 아래 사진에서 확인해 볼 수 있듯 수기로 직접 작성해 제출한 형식이다. 특히 1955년까지 제출한 논문들은 ‘이화여자대학교’라는 교명이 인쇄된 원고지에 제출한 원본이 고스란히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다. 그리고 이 논문들을 넘기다 보면 이 시기 선배들이 어떻게 공부를 하고 논문을 작성했는지가 머리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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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의 논문 표지에는 제목 밑에 ‘본 논문은 단기 4286년 7월 피난부산가교사에서 학내집담회 시에 보고하였음’이라는 내용이 있어 1954년 3월과 7월 학위를 받은 대학원생들이 부산 피난교사에서도 학업을 지속하고 논문 작성에 열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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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로 작성하다 보니 실험결과를 알려주는 그래프와 도표는 물론 신체 장기를 직접 손으로 그린 것 또한 매우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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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원고지에 작성해 제출한 논문이 1955학년도 제출 논문부터는 빈 종이에 수기로 작성 후 복사한 것을 제출하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논문 작성 후 최종 제출 전 오탈자나 인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을 파란색 펜으로 수정한 부분들이 보이는 것도 이 시기 논문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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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색의 구분이 필요한 그래프의 선들은 인쇄 후 빨강, 파랑색 펜으로 덧칠하여 표기 후 제출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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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간단한 컴퓨터 작업으로 쉽게 작성하고 그릴 수 있는 것들을 전부 수기로 해결하며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작성해 제출한 그 시절의 논문 한 장 한 장에는 당시 학생들의 열정과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현재 도서관에 소장중인 1950년대 논문들은 모두 검정색 하드커버로 묶여있기는 하나 논문을 한 장씩 넘기다보면 왼쪽편에 구멍들이 뚫려있다. 아마도 이 논문을 제출했을 당시에는 왼쪽에 구멍을 뚫어 끈으로 묶어 제출했던 것을 시간이 지난 어느 시점엔가 도서관측에서 논문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와 같은 검정색 논문 하드커버를 제작한 후 논문을 새로 제본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정, 사회, 학교 어느 곳 하나 여유롭지 않았던 1950년대 대학을 넘어 대학원에서 학업을 지속하고 학위논문이라는 결과물을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결과물을 도출해낸 이들의 열정과 결실이 있었기에 그 기반 위에서 지금의 진일보한 연구성과들이 나올 수 있었다. 가끔 지치고 힘들 때 도서관 서가에 가서 이 시기 선배들의 논문을 한 번씩 들춰보자. 정성이 묻어나있는 그들의 글자 하나 하나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고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잡아 주는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