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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칼럼

보라색 소변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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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12-17 조회수 2,743

보라는 파랑과 빨강이 섞여서 만들어진 색으로 예전에는 보라색 염료의 추출이 어려워 귀해서 황실이나 귀족들만 사용했다. 보라색이 보편화된 것은 1856년 합성염료가 발견된 이후다. 부드럽고 화려하며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보라색이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보라색을 보면 놀라고 당황한다. 무색이거나 노랑으로 알던 소변의 색깔이 보라색으로 변해버린 경우이다.


하루에 6~8회 보는 소변은 볼 때마다 다른 색깔을 보인다. 수분 섭취량, 활동 정도, 음식이나 약, 날씨에 따라 차이가 난다. 건강한 소변은 투명하고 맑거나 옅은 갈색이다. 소변의 색깔로 건강상태를 추정할 수 있어, 색깔 도표로 상태를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많다. 보라색 항목에서는 대부분 ‘보라색의 소변은 없다.’라고 되어있지만, 보라색의 소변은 분명히 있다.


보라색 소변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1812년 영국 왕 조지 3세의 주치의가 했다. 기이한 행동으로 유명한 조지 3세는 변비가 심했고 보라색 소변을 봐서 유리로 된 요강의 테두리가 고리 모양으로 착색되었는데, 이를 ‘왕의 쪽빛 소변’으로 기술됐다. 최초의 의학적 보고는 영국의 바로우와 딕슨이 1978년 의학잡지 란셋지에 보라색 소변주머니 증후군을 게재했다.


의식불명이나 방광기능 마비로 스스로 소변을 보지 못해 도뇨관을 끼고 지내는 환자에서 소변이 보라색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소변뿐 아니라 끼고 있는 소변 줄과 주머니까지 보라색으로 착색이 되는데, 심각하고 나쁜 징조로 생각하여 놀라서 응급실을 찾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보라색 소변주머니 증후군(purple urine bag syndrome)’이라고 한다.


보라색 소변주머니 증후군이 발생하려면, 장에서 아미노산 소화 장애와 요소 분해효소를 생산하는 세균에 의한 요로감염이 있어야 한다. 트립토판이 덜 소화된 상태로 대장으로 이동하면 장내세균에 의해 인돌 유도체가 만들어진다. 인돌이 흡수되어 간에서 인디칸으로 대사되는데 변비가 있으면 장으로 분비되지 않고 소변으로 배출된다. 인디칸은 소변에서 대장균, 폐렴간균, 녹농균 등 요로감염 병원균에 의해 인독실로 변환된다. 요로감염으로 알칼리성이 된 소변에서 인독실이 산화되어 결정체가 되면서 소변이 보라색으로 바뀐다.


보통 소변 주머니나 줄이 보라색으로 변한 것을 먼저 발견한다. 도뇨관을 삽입하고 있는 여성에서 소화불량과 변비가 있으면 잘 나타나고, 요양기관에 거주하고 있는 장기간 도뇨관 유치 환자의 5% 정도에서 발생한다. 예상치 못한 보라색의 소변으로 놀라서 당황하지만, 도뇨관의 착색 이외에 임상증상은 일반 요로감염과 비슷하고 위급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도뇨관을 교체하고 통상적인 항생제를 투여하여 요로감염을 치료하면 후유증 없이 해결된다.




글·심봉석 이대목동병원 비뇨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