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의료역사이야기
한국 간호의 시작 보구녀관 “한국 간호의 시작점에서 이화 간호를 찾다”
1886년 미국 감리교 선교의사로 이화학당 설립자 스크랜튼 여사의 아들인 윌리엄 스크랜튼(William’s B. Scranton)이 정동에 선교 의료원(1887년 고종이 ‘시병원’이라 명명)을 개원하였다.
당시 부녀자들이 미국인 남자의사에게 진찰받기를 매우 꺼려해 스크랜튼 부인이 미국 감리교 해외 여선교회에 여의사의 필요성을 제기, 1887년 여의사 메타 하워드(Metta Howard)가 내한하면서 서울 정동(貞洞)에 있는 이화학당 구내 한옥을 개조해 온돌방 병실을 갖추고 여성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부인병원이 시작된 것이다.
보구녀관은 ‘모든 여인들을 구하는 집’(Salvation For All Women Institution)이란 뜻으로 서울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병원이자 현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전신이다.
서양 근대 의료 지식을 기반으로 한 학문적, 전문적 간호교육의 시작은 의료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간호원 양성소에서 비롯됐다. 당시 보구녀관에는 외국인 선교 간호사 밖에 없었고, 기독교인 여성들을 보조원으로 채용해 의료선교사 지시대로 일하면서 환자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복음을 전했지만 전문 간호인이 아니었으므로 간호원 양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됐다.
미국 북감리회 여자해외선교회 소속 선교사인 에드먼즈(Margaret J. Edmunds, 미시간 대학 간호학교 졸업)는 1903년 3월 18일 서울에 파송돼 보구녀관에 그해 12월 간호원양성학교(현 이화여대 간호과학부의 전신)를 설립하고 초대 간호원장이 됐다. 이곳에서 첫 한국인 간호원인 이그레이스, 김마르다, 정매티, 김엘렌 등이 배출됐다. 서양식 간호사 제도가 시작된 곳도 보구녀관이었다.
에드먼즈는 이화학당의 페인(Josephin O. Paine)의 도움을 받아 한복과 양장을 개조해 만든 최초의 한국적인 독특한 간호제복을 만들었다. 간호규정, 간호원이라는 용어도 한국 최초로 만들어졌다. 아픈 사람을 돌보고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Nurse’를 간호원(看護員)이라 처음 명명했다가, 일제강점기부터 간호원 대신 간호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1987년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간호사로 변경됐다.
간호원 양성소의 교육 과정은 6년이었는데 그 이유는 읽기, 셈하기 등의 기초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초교육이 필요 없는 이화학당 출신 학생들은 3년 과정을 거쳤다.
입학자격은 기독교인으로 읽고, 쓰고, 시계를 볼 수 있어야 했다. 입학연령은 21~31세였다. 부모의 입학 동의서와 의사의 건강진단, 소속 교회의 증서, 소액의 입학금, 주근과 야근의 겸행, 학과에 방해되는 가무는 금지됐다. 학생은 재학하는 동안 보구녀관에서 기숙을 하고, 학교에서 숙식과 제복, 세탁, 서책과 문구 등을 제공받았다.
기독교적인 사랑이라는 간호 교육의 이념 아래 입원환자를 위한 임상간호에 치중하였고, 환자의 질병관리 뿐만 아니라 환자의 신체적, 심리적 안위를 도모하며 건강한 생활을 위한 건강교육까지 실시하는 등 상당히 진취적이고 질적인 교육이 전개됐다. 학습방법은 도제형태의 견습 교육이 주를 이뤘다.
당시 간호원은 12시간 근무했다. 낮번 간호원의 하루 일과는 아침 7시에 근무를 시작해 병동환자들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하고, 8시에 기도회에 참석해 환자들과 성경 공부를 한 뒤 10시부터 특별 식이, 드레싱, 찜질, 투약, 침상 등을 정리했다. 방문객이 환자를 피곤하게 하는지 등을 살피는 간호활동도 포함됐다. 오후에는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고, 오후 5시에는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드레싱과 마사지 등을 수행한 후 환자상태를 보고하기 위해 낮번 활동내용을 기록했다. 간호원들은 간호학생들과 일과를 같이 했고 강의는 환자 간호 이외의 시간에 실시돼 오후 10시경 끝났다.
교과목은 인체골격, 순환과 혈액검사, 병원규칙, 환기, 수술준비, 예수생애 등으로 구성됐다. 붕대법, 침상만들기, 목욕법, 투약, 간단한 식이준비, 활력증상 측정, 증상기록, 특수약물 투여, 세척, 찜질, 드레싱, 약도포, 마사지 원리, 사후처치 등에 대한 실습도 행해졌다. 이외에도 간호윤리가 필수과목으로 포함됐고, 성경, 음악, 산수, 국어, 한문, 영어 등의 기초과목도 공부했다.
보구녀관 간호원양성소의 제1회 가관식은 1906년 1월 25일 거행됐다. 한국 최초의 가관식은 보구녀관 진료소 대기실에서 열렸다. 가관식의 주인공은 최초의 간호사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였다.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가 1908년 11월 5일 졸업함에 따라 보구녀관 간호양성소는 조선 최초로 간호사를 배출했다. 보구녀관 간호원 양성소는 한국 의료사에 있어 전문적인 간호원을 배출하는 통로를 최초로 마련하였고, 졸업한 간호원은 한국 간호역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보구녀관은 한국 최초의 여성전문병원, 한국 최초의 간호원 양성소가 설립되었던 기관이며 한국 의료를 담당하고 전문 의료인이 배출된 요람이었던 것처럼,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구하는 이화가치를 실현하고 드높이고자 하는 “이화 간호”라는 그 위대함의 이름으로 나눔과 섬김, 사랑의 기독교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간호부 조직문화위원회>
이미란, 백경희, 조영미, 양수임, 임은영 간호파트장
참고문헌
1. 이화여자대학교 간호과학대학, [간호과학대학 45년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0
2. 이방원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의 설립과 운영], 의사학, 20-2,2011
3. 이덕주 [선교초기 보구여관 간호교육에 관하여], 신학과 세계 제89집, 2017
4. 옥성득 [한국근대간호역사화보집] 옥성득, 대한간호협회,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