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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료역사이야기

미신과 무지로 고통 받던 조선 여성들의 몸과 마음까지 치료한 여의사들

파일 역사.jpg       
작성일 2023-07-12 조회수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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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주, 매달 육체적인 고통이 우리에게 쏟아졌다.

가슴병, 가난, 더러움, 누더기, 인류가 계승하는 모든 비참함이 우리에게 벌어졌다.

메리 스튜어트 의사, 1915년 보고서에서

<보구녀관>이 문을 열던 당시 여성들의 삶은 비참했다. 여성들은 ‘남성 의사에게 몸을 보이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당시 여의사들의 눈에 비친 조선 여성들의 비참한 삶을 살펴보자.

우리는 양반집의 우아한 응접실로 안내받았다. 놋쇠 재떨이에 담배를 가져왔다.

집의 남성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여자의 얼굴을 가리고 응접실 뒤편으로 데리고 올 텐데

그녀가 우리를 보지 못하도록, 그녀가 지나가는 동안 부디 방을 나가있어 달라’ 부탁했다.

남편은 아내의 눈에 검은 안경을 쓰게 했고, 벗기지 말라고 했다.

남편은 ‘비록 나는 두려워하지 않지만, 아내는 안방에 있는 외국인의 존재가

귀신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가문에 화를 불러오지 않을까 두려워 한다’고 말했다.

- 1901년 엠마 엔즈버거 의사

진료 의사를 찾을 수 없고 제대로 된 치료 방법도 모르던 여성들은 온갖 비과학적인 해결책에 매달렸다. 민간요법을 따라 얻기 쉬운 약재로 약을 만들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고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염증에 걸린 관절을 치료하는 전통적인 방법의 하나는 하수구의 흙과 섞은 달걀 반죽이다.

우리가 붕대를 감기 전에 이것을 세척하는 데에도 몇 시간이 걸린다.

우리의 치료방법은 그들을 크게 놀라게 한다.

종기처럼 이미 불결한 어떤 것을 세척한다는 생각을, 그들은 결코 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급성 편도선염은 뜨거운 돼지고기나 개고기로 만든 국이 완화시켜준다고 말한다.

1902년 보구녀관 박에스더 의사

한 여성이 클로로포름(Chloroform, 흡입 전신마취제)을 사러왔다.

그녀는 어린 소녀를 마취시키고 몸 임파선을 치료하기 위해

왁스를 바른 그녀의 목에 구멍을 뚫고 끓는 기름을 붓는, 다소 단호한 치료를 하길 원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약을 판매하지 않았다.

1902년 엠마 언즈버거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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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보구녀관 진료실. 커틀러 의사가 오른쪽에 서있고, 이그레이스 간호원이 아기를 안고 앉아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한국인 최초 여의사 박에스더는 조선 가정에 퍼진 미신과 무당, 해괴망측한 치료법에 절망했다. 의사로서 싸워야하는 것은 단순한 질병이 아님을 깨달았다. 뿌리 깊은 미신과 무지도 함께 개선하고 계몽시켜야했다. 박에스더와 여성 의사들은 조선 여성들의 육신의 병 뿐 아니라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까지 치료해나갔다.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장례 준비가 끝나있었다. 내가 너무 늦게 왔다고 말했지만, 아직 맥박이 뛰고 있었다.

서둘러 강장제를 투여하기 위해 준비할 때 놀랍게도 그녀의 입 안에 생쌀이 채워져 있음을 발견했다.

그녀의 영혼이 저승길에 갈 때 사용하라고 넣어둔 것이었다.

쌀을 제거한 후 그들이 이 쌀을 조심스럽게 보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유를 묻자, 그 쌀이 말라리아 특효약이라고 대답했다.

1902년 박에스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경험했다.

많은 이들이 콜레라 전염병을 막기 위해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여서

자기 집으로 악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주기를 원했다.

콜레라는 ‘쥐병’으로 알려졌는데 고양이가 쥐보다 더 강한 동물이자 천적이어서

그림이 병을 멀리 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1903년 박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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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구녀관 아침기도회와 보구녀관 대기실, 1908년. 전도부인들이 보구녀관 대기실에서 환자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며 믿음을 전파했다.

박에스더 등 여성 의료인들의 헌신적인 치료와 기적적인 성과가 입소문이 나며, 점차 많은 사람들이 서양 의학에 관심을 가졌다. 보구녀관 여의사들은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소문이 났다. 몰려드는 환자에 1주일에 단 하루도 온전히 쉬지 못할 정도로 헌신했다. 황메리(여메례), 김마르다 등 보구녀관에 상주하는 ‘전도 부인’들은 대기하는 환자들에게 신실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가르침을 알렸다. 이들은 미신과 무지로 고통 받던 조선 여성들의 몸과 마음까지 치료해주었다.

<참고문헌 >

K.W.C. 보고서

권복규, 보구녀관 최종보고서 1887~1913

이방원, 한국의학의 빛이 된 최초의 여의사-박에스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