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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료역사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간호복을 찾아서

파일 간호복.jpg       
작성일 2023-07-12 조회수 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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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라 부른다. 지금은 간호사들이 다양한 색의 간호복을 입고 활동을 하지만 꽤 오랜 기간 간호사들이 흰색 간호복과 흰색 캡을 착용하였던 것에서 기인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간호복은 늘 흰색이었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간호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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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 제1회 예모식(1906) [출처 : 이화역사관]

위 사진은 1906년 음력 설이던 1월 25일 개최된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 제1회 예모식 날의 모습이다. 이제는 더 이상 간호사들이 머리에 캡을 착용하지 않지만 한때는 간호사의 캡이 간호사를 상징하던 시절이 있었다. 따라서 머리에 캡을 쓰는 예모식은 간호사로서의 정체성을 부여받는 중요한 행사였다. 사진을 보면 가운데 앉아있는 당시 간호원장 마가렛 에드먼즈(M. Edmunds)의 양 옆으로 4명의 한국인 간호사가 서있는데 2명은 캡이 있지만 2명은 없다. 머리에 캡을 쓴 2명은 이 날 예모식을 치루고 선진간호원이 된 이그레이스(좌)와 김마르다(우)이고, 그렇지 않은 2명은 후진간호원 김엘렌(좌)과 정매티(우)이다. 전근대사회에 있어 남성들만의 전유물과도 같았던 모자(관冠, 모帽)를 젊은 여성들이 공개적인 예식을 치루며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당시 조선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줌과 동시에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캡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이들이 입고있는 간호복은 모두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 옷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간호복이다. 청색 상의와 흰색 치마로 구성된 이 간호복은 당시 간호원장 에드먼즈가 이화학당 당장 페인(Josephin O. Paine)의 도움을 받아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간호사였던 에드먼즈가 간호복을 디자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그녀가 남긴 보고서를 통해 간호복 제작의 고충을 짐작해볼 수 있다.

불편한 한복을 대신할 적당한 유니폼을 만들 계획이 필요했다. 밤에는 꿈꾸고 낮에는 그것을 계획하면서 양재 본능에게 “잠자는 자여 깨어라”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했으며, 오랫동안 기다리고 많이 찾은 후 확보한 귀중한 옷을 재단할 목적으로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견본을 확보해준 페인 양에게 감사한다. 우리는 늘 양재가 어려운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일 선교부에서 양성학교 간호원장의 자격에 대해서 미리 물었더라면, 그 직함 아래 양재를 강제로 넣었을 것이다.(M.Cutler, M.Edmunds, "Po Ku Nyo Koan - Hospital, dispensary and Nurses' Training School, Seoul-", Korea Woman's Conference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1904, p.10)

에드먼즈가 만든 간호복은 한복과 양장을 조합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형태였다. 상의에 약 2인치 너비의 오른쪽으로 길게 내려가는 흰 목 깃과 양쪽 소매 끝 약 3인치 너비의 흰색 깃이 들어간 형태는 한복의 저고리 깃과 끝동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었다. 또 왼쪽 가슴에는 가위·체온계·펜을 꽂은 지갑을 달았는데, 아래 사진에서 가슴에 꽂은 지갑의 모습까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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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 학생들(1908년 4월) [출처 : 드루대학교 아카이브]

위 사진에서는 아직 이 간호복을 입지 않은 세 명의 학생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는데 아마도 이들은 수습 기간 중에 있던 학생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의 교육과정을 보면 처음 입학한 학생들은 2개월 정도의 수습기간을 거친 후 간호복을 입을 수 있는 후진간호원이 되어 3년 정도 교육을 받았다. 이 교육과정을 무난히 수료하게 되면 예모식을 치루고 간호 캡을 쓴 선진간호원이 되어 다시 3년여간의 교육을 받았다. 이렇게 총 6년여에 걸친 과정을 모두 마쳐야만 비로소 졸업을 하고 정식 간호사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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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원양성학교 제5회 졸업식(1914년 5월) [출처 : 드루대학교 아카이브]

정식 졸업 간호사가 되면 다시 복장이 바뀌는데 이제는 상하의가 모두 흰색인 간호복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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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원양성학교 제1회 졸업생 이그레이스(좌)와 김마르다(우)(1908년) [출처 : 드루대학교 아카이브]

한국인 최초로 졸업 간호원이 되어 이 흰색의 간호복을 처음 입은 이들 역시 이그레이스와 김마르다였다.

이처럼 간호복을 입고 또 간호 캡을 쓴다는 것은 하나하나 교육의 과정을 완수해야만 얻어낼 수 있는 귀하고 값진 일이었다. 아마도 당시 간호원양성학교 학생들은 이같은 과정 속에서 간호사로서의 성취감, 자부심, 책임감을 느끼고 배우며 전문직 여성으로의 발걸음을 내딛었을 것이다. 각급 학교의 졸업식이 한창인 요즈음,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의 졸업생들처럼 지금까지의 위치를 떠나 새로운 출발선을 마주하며 한껏 부푼 기대감을 갖고 있을 이들의 또 다른 첫 발걸음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