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의료역사이야기
W.F.M.S. , 한국 초기 여의사들의 길을 비추다
이화의료원은 2023년 10월 31일 보구녀관 개관 136주년과 함께 이대서울병원 지하1층에 이대동대문병원 역사라운지를 개관하였다. 이대동대문병원 역사라운지는 2008년 폐원되어 지금은 사라진 이대동대문병원과 병원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억하고자 조성한 공간이다.
미국 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W.F.M.S.)의 지원으로 1887년 정동에 보구녀관이 문을 연 이후 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이 찾아와 병든 몸과 마음을 치료받을 수 있었다. 보구녀관을 찾아오는 환자들을 보며 스크랜튼(M. Scranton) 대부인과 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R.S. Hall)은 새로운 지역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힐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마침내 1892년 스크랜튼 대부인이 동대문 언덕 부지 1,000여 평을 구입하며 볼드윈 진료소가 지어졌다. 이것이 이화의료원 동대문시대의 시작이 되었다. 1912년 동대문 언덕 위에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동대문부인병원)이 신축되고 1913년 정동의 보구녀관은 이곳과 합병되었다.
새 병원이 지어졌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의사는 W.F.M.S.에서 파견한 한 두 명의 외국인 의사들 뿐이었다. 1900년 한국 여성 최초로 김점동(박에스더)이 의사가 되어 한국에 돌아와 활동했지만 불과 10년만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후 한국인 여의사가 배출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928년 홀이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하기 이전부터 홀과 커틀러(M. Cutler) 의사가 보구녀관과 평양 광혜여원, 동대문부인병원에서 여성의학반을 만들어 여의사 양성을 위한 기초 교육을 시작했으나 이 교육만으로는 의사가 될 수 없었다. 이 시기 한국 여성이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외국 소재 의과대학에 입학하거나 조선총독부의원부속 의학강습소(1916년 경성의학전문학교로 개칭)의 청강생으로 입학해 공부를 마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한국 선교 활동 초기부터 줄곳 한국인 여의사 양성에 노력을 기울였던 홀은 1910년대부터 의학에 관심을 가진 여학생들이 이 학교들에 입학해 공부하여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이를 통해 1910년대 후반부터 김점동의 뒤를 이은 한국인 여의사들이 배출되었다. 이에 이대동대문병원 역사라운지는 개관 기념 첫 기획전으로 W.F.M.S.의 섬김과 나눔의 빛이 한국 초창기 여의사들의 탄생과 성장에 끼친 역사를 조명하고자 김점동에서부터 시작된 1900년대 초반 한국 초기 여의사들의 활동을 첫 전시로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29년까지 배출된 한국인 초창기 여의사들 각각의 이력과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여의사 양성 및 교육, 수련에 힘쓴 로제타 셔우드 홀・메리 커틀러・메리 스튜어트 의사의 역할과 동대문부인병원에서 의료인으로서의 경력을 쌓은 후 지역사회 의료 보급에 앞장섰던 여의사들의 활동, 6・10 만세운동을 지원했던 동대문부인병원과 당시 의료진들의 헌신의 내용들을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경하 이화의료원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W.F.M.S.가 한국 여성 의료 역사에 끼친 영향을 되새기며 초기 여의사들의 진취적이고 헌신적인 삶이 후배들에게 이어지길 바란다”며 전시 개막 소감을 밝혔다.
이 전시는 이대서울병원 지하1층 이대동대문병원 역사라운지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